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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개와 나_ 장기간병의 기록



시간이 지나, 당시에 썼던 글을 다시 읽었다.

지금 혼자 아픈 개를 돌보며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고 있을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몇 편의 작은 글을 올린다.


*

1인 가구의 개가 아프면 
(토당이 간병 3개월차에 썼던 글)

1인가구의 개가 아프면, 그 1인은 개를 돌보는 일에 전념한다.

1인가구의 개가 많이 아프면, 그 1인은 오로지 개를 돌보는 간병인으로 살아간다.

일이 끝나는 즉시 번개처럼 돌아오고 약속은 아예 잡지 않으며 식료품을 사거나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등 꼭 필요한 짧은 외출만을 한다.

왜냐하면 그 1인이 아니면 아무도 없기 때문에.

1인이 나간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개 혼자 무슨 일을 당한다는 상상은, 할 수도 없는 가장 최악의 것이기 때문에.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 부탁해 잠시 개를 맡아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개의 습성과 취향과 미약한 신음소리와 호흡의 거친 정도와 받아들이는 음식의 질감과 약의 농도와 통증이 올 때의 눈빛을 그들은 알지 못하니까, 1인과 오래 살아온 개는 또한 그 1인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 대해서 안심하지 못하니까, 이렇게나 우리는 똑같으니까.


토당이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한지 3개월이 되어간다.


엊그제 파리행 비행기 티켓 취소 전화를 걸었다.

올해 초 친구 2명과 계획한 여행이었다. 7년 만에 시간과 용기를 내어 떠나보겠다고 다짐했던 올해의 가장 설레는 이벤트였다. 출국일은 7월 6일이었다. 미래의 일을 과거형으로 쓰는 마음.


실은 3주 전 일도 그만두었다. 9년 동안 일한 사무실이었다.

오랜 시간 나가있기가 불안하고 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한 까닭도 있지만, 집중해서 아이를 간호하고 싶었다. 24시간 함께 머무르며 밥도 자주 먹이고 약도 편안히 먹이고 아침저녁 하는 우리의 산책이 서두르지 않는 고요한 것이 되길 바랐다. 아이의 몸에 종양은 있고 그것이 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그래봤자 아이는 몇 개월 더 사는 거라고 하지만, 그러고 싶었다. 그 몇 개월을 아이와 충만히. 통장 잔고가 바닥날 때까지 둘 다 맛있는 거 먹으면서 행복하게.

개의 1달은 사람의 6개월 정도라고 한다. 3개월을 투병해준 토당은 벌써 1년 6개월이나 내 곁에서 살아주고 있는 거였다.


우리의 투병 시간은 어차피 다가올 죽음을 향한 불안과 두려움에 잠식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은 우리에게 다가온 또 다른 여행이 되어야 한다.




*

네 마리 개의 방
(토당이 간병 4개월 차에 썼던 글)

2015년 여름. 키키의 고통을 함께 했지, 우리.

2016년 여름. 은비의 고통을 함께 했어, 우리.

2017년 다시 여름. 토당의 고통을 함께 하고 있어, 우리.

우리, 언제나 이 방에서.

이 방, 너희 모두와 내가 있는 이 방.

떠난 아이들 남은 아이들 모두의 영혼이 함께 존재하는 이 방.

우리 모두 떠난다 해도 우리의 영혼은 그대로 남을 이 방.

네 마리 개의 방.


고통은 여행 같아. 우리가 짐을 꾸려 일부러 멀리멀리 떠나는 길고도 짧은 여행. 한 아이가 아프면, 우리는 즉시 어떤 여행길에 오른다.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시간은 즉시 다른 빛깔과 다른 밀도와 다른 냄새를 갖게 된다. 낯선 여행지에 도착한 것만 같아. 도착하는 날을 예상할 수 없을 뿐이지. 뇌종양입니다, 췌장암이에요, 전립선에 매스가 보여요, 남은 수명은……. 불쑥 진단을 받는 그 날이 여행지의 도착 일이지. 그날부터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 이름조차 몰랐던 아주 아주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거야. 그리고 여행을 시작한다. 네 옆에 가만히 머무르며 하나, 둘, 셋, 넷… 너의 호흡을 세는 여행. 너의 숨 속에서 내가 숨 쉬고, 너의 비명 속에서 내가 비명 지르는 여행. 방구석에 꼼짝없이 웅크려 앉은 너의 낮은 시선으로, 이 방의 풍경과 사물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여행. 종이가 쌓인 구석의 풍경, 뭉툭하고 둔중한 모든 모서리의 풍경, 따듯하고 포근한 사물과 차갑고 날카로운 사물…… 지루했던 이 방의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여행. 우리가 각자 다른 꿈을 꾸며 오후1시까지 늦잠을 자는 침대는 거대한 강물 위를 흐르는 작은 보트가 되는 여행. 그것을 침대보트라, 우리끼리만 통하는 이름을 붙이는 여행. 의사가 정해준 2개월 혹은 3개월의 시간 속에서, 더 이상 시간을 세지 않는 여행. 분과 초 단위의 시간이 사라지고 오직 너와 나, 너희와 나, 킁킁 냄새를 맡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아름다운 나무와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있는 뼈와 근육을 사용해 길을 걸어가는 우리만이 존재하여 나의 이름도 사라지고, 너의 이름도, 우리의 이름 따위는 이제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단지 우리의 몸뚱이가 이 방에, 이 거리에, 지구에 지금 함께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오직 중요한 것만이 살아남는 여행.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빛 속에서, 초연하고도 집중된 너의 눈빛 속에서, 남은 우리가 살아갈 날들을 배우게 되는 여행. 언어 없는, 너와의 소통, 우리의 바라봄, 시선의 교차, 너의 눈길과 나의 눈길이 오가는 그 길, 그 신경 줄처럼 얇고 섬세한 길, 그 길이 바다처럼 광활해지고 숲처럼 깊어지며 우리가 그 자연의 한가운데 들어가 있음을 문득, 발견하는 여행. 모든 것은 끝이 있음을, 꽃은 지고 생명은 사그라짐을, 파괴와 죽음이 본성임을 늘 위풍당당 증명했던 그 무서운 자연의 내면의 속삭임을 듣는, 너와 함께 듣는, 이어폰을 나눠 끼고 차창 밖 흘러가는 풍경을 보며 우리만의 음악을 듣는, 어디론가 가고 있는 그 과정이 실은 여행의 전부인, 본질인, 그래서 매순간의 선율에 더 충실해지는, 충실히 귀 기울이게 되는 우리의 작은 여행.


물론 여행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지. 두렵고 힘이 든다. 식욕 없는 너에게 밥을 먹이고, 이렇게 하면 먹을까 저렇게 하면 먹을까 여러 가지 식단을 차려두고, 그중 어느 것도 먹지 않으면 이대로 영원히 먹지 않는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고, 겨우 밥을 먹인 후에는 약을 먹이고, 쓰디쓴 것을 네 입에 넣기 위한 또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하고(그중 하나가 성공하면 얼마나 기쁜지!), 하루 4번 시간을 나누어 그렇게 밥과 약을 먹이고, 계속 먹이고, 화장실에서 쉬를 하다 힘없이 쓰러지는 너를 일으켜 세우고, 울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며 축 쳐진 너의 작은 몸을 들어 올리고, 방구석에 꼼짝없이 웅크려 앉아 죽음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너를 바라만 봐야 한다. 결국엔, 그 길을 넘어서는 너를 가만히 지켜봐야 한다. 그 순간 우리의 여행은 각자의 여행으로 분리되는 것이다. 네가 가야 할 길과 내가 가야 할 길이 갈라지는 것이다. 우리의 여행은 종료되고 각자의 여행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

너의 말
(토당이 투병 막바지에 썼던 글)


마치 서명처럼 너는 피를 흘리고.

오늘도 피를 흘리고.


네가 흘린 피를, 나 가만히 들여다봐.

언어 없는 네가 전하는 오늘의 메시지 같아.

하늘색 타일 위에 번진 붉은 피.


어느 땐 하트 모양이야.

어느 땐 마침표도 찍혀있네.

어느 땐 긴 말줄임표야.


가장 말없는 너.

나보다 말없는 너.

말없기로 둘째가라면 서운할 일등과 이등이 이렇게 서로를 읽는다.



*


내 아이의 호스피스

(토당이 떠나고 3개월 후 썼던 글)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의사에게 물었다. 타들어가는 목소리로, 눈앞이 캄캄한 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무얼 할 수 있나요?

의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다급해졌다.

호스피스… 이제 호스피스 라는 걸 하면 되나요?

의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보호자님이 해오신 게 호스피스예요.

지난 5개월 동안 해오신 게 호스피스예요. 할 수 있는 걸 다 하셨어요. 정말 잘 해오셨어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몰랐다. 지금까지 내가 한 것이 호스피스라는 걸. 3월부터 8월까지의 그 시간을 사람들은 호스피스라고 부른다는 걸. 의사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보호자님의 밀도 높은 케어 덕분에 아이가 예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버텨준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결정을 하셔야 하는 때입니다.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던 그 때, 절대로 오지 말아야 할 그 때, 절대로 우리에게만은 해당되지 말아야 할 그 때가 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하건데, 나는 그 때를 분명 맞닥뜨리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잘 알 뿐만 아니라, 피할 수 없이 맞닥뜨릴 그 순간을 철저히 대비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 순간, 오로지 나의 몫으로 남게 된 결정의 순간, 나의 결정에 후회됨이 없기를, 결정 속에 일말의 죄책감이 자리하지 않기를 철저히 대비하여 아이의 암 진단을 받은 후 몇 개월을, 오로지 아이와의 시간에 나를 집어넣었던 것이었다.

아이와 오로지 행복하기 위하여. 아이의 마지막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투병이 아름다운 여행이 되길 바라며.

결정은 그리 늦추지 않았다. 결정 전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늘 산책하던 길을 천천히 걸었고, 8월 중순의 후덥지근하지만 따스한 바람을 함께 맞았다. 몸의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하면서도 아이는 마지막까지 의젓하게 지금 이 순간을 느꼈고, 지금 이 순간 마음의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한 나를 걱정해주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지금, 아이와의 기억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아프고 슬픔이 차오르지만, 동시에 우리의 시간이 좋았다는, 좋은 시간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우리는 분명 좋은 시간을 함께 했다는 믿음이, 가슴 한켠에 묵묵히 자리잡아 애도의 아픔과 슬픔을 지그시 눌러준다. 그렇게 차오르는 것을 누르고, 또 다시 차오르는 것을 누르며, 이 글을 쓴다. 지금 어느 작은 방에서 아픈 반려견을 돌보며 낯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향해.


종교학대사전에 따르면 호스피스 케어란, 악성 질환에 걸려서 치유의 가능성이 없고, 진행된 상태 또는 말기 상태에 있는 환자와 그 가족이, 죽을 때가지 남겨진 시간의 의미를 발견해서, 그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배려하는 광범위한 치료를 일컫는다. 즉 호스피스의 대상은 환자 뿐 아니라 그 가족인 것이다. 2017년 3월부터 8월까지, 내가 아이를 호스피스했다면, 아이는 나를 호스피스했다. 우리는 서로를 호스피스했다. 나는 아이의 몸을, 아이는 나의 마음을. 아이의 몸과 나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선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우리는 행복하고자 했다. 편안하고자 했다. 그 외의 다른 것은, 우리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


개를 키운다는 건


개를 키운다는 건,

하루에 두 번 개와 함께 풀과 바람에 코를 킁킁거리는 일,

개의 눈동자를 통해 나를 바라보는 일,

기다리는 개를 향해 일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달려가는 일,

개의 생로병사를 보며 나의 생로병사를 생각하는 일,

작은 죽음을 돌보며 살아가는 일,

작은 죽음을 늘 곁에 두고 살아가는 일,

작은 죽음이 일으키는 거대한 변화를 경험하는 일.



글_ 김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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