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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업은 흰 개와 나



다친 새들이 툭하면 내 발치로 다가와 쓰러지곤 하였다

라는 시구가 있다.

길 잃은 개들이 툭하면 내 앞으로 다가와 서성이곤 하였다

라고 나는 생각한 적이 있다.


2010년 북한산 아래 살았던 이래로, 그랬다. 길 잃은 개들이 많던 동네였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버려진 개들이 많던 동네였다. 뉴타운 조성을 위해 재개발이 되면서 원주민들이 버리고 간 개들이 떼를 지어 산에서 살면서 밤이면 먹을 것을 찾아 마을에 내려왔다. 북한산 아래 마을에 사는 3년 동안 그 개들을 보았다. 개들과 마을 사람들의 갈등을 보았다.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함을 겪었다. 내쳐지는, 자꾸 내쳐지기만 하는 개들의 불안이 온전히 내게로 왔었다. 산 아래의 그 마을은 성장과 생산 중심인 인간세상의 차가운 뒷면이었다. 나는 무력하고 심약했으므로 불안은 밤마다 밤의 산처럼 거대하게 증폭되었다.


이후로, 길 잃은 개들이 툭하면 내 앞으로 다가와 서성이곤 하였다.

아닐 것이다. 이 도시에 사는 한, 인간에 의해 타의로 길 잃어버린 개들은 언제나 내 곁을 스쳐가고 있었고 이제야 나는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여 그들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볼 수 있게 되자, 혼란하였다. 저들을 어찌할 것인가. 아니, 나는 어찌할 것인가. 모른 척 스쳐갈 것인가, 아니면……


손을 내밀었을 때, 킁킁 냄새를 맡거나 다가오는 개들은 데려와 주인을 찾아주는 일을 하였고 경계하고 도망치는 개들은 그러지 못했다. 이는 몹시 소극적인 구조로, 경계가 심하여 잡기가 어렵고 극단의 위험상황에 놓인 개들까지 적극적으로 구조, 치료, 입양 활동을 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구조라고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낯선 개를 데려오고, 개의 사진을 찍어 전단지를 만들고, 수백 장의 전단지를 품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일을 하고 있자면, 심약하고 무력한 나의 머리와 가슴은 스스로에 대한 초조한 질문들로 뒤흔들린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왜 그 개를 지나칠 수 없었나? 나는 왜 또 타자의 삶에 개입했는가? 어째서 이토록 몰입하는가?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은 내팽개치고 전단지를 붙이러 다니는 나는 동물구조자인가?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어째서,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고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 그럴 텐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담벼락을 마주하고 ‘개의 주인을 찾습니다’라고 커다랗게 인쇄된 전단지를 붙여나가는 사람의 속내는 이러하다. 일 년에 한두 번 꼴로, 그 사람은 전단지를 붙인다. 그는 가끔, 개의 주인을 찾는 전단지를 붙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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